1. 프롤로그: 지하철 2호선과 슬라임 던전
오전 8시의 신도림역.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닫히는 기계적인 파열음 사이로 수만 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온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비장하다. 마치 대규모 레이드(Raid)를 앞둔 전사들처럼, 혹은 공성전을 준비하는 길드원들처럼 눈빛엔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 나는 그 거대한 흐름 속에 섞여 환승 통로를 걸으며 생각한다. 저들의 머릿속엔 지금 무슨 거대한 철학이 들어있기에 이토록 치열하게 발을 내디딜까.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들의 머릿속은 놀라울 만큼 고요하다.
"오늘 점심 뭐 먹지?", "부장님 기분이 어떨까?", "카드값 나가는 날이 언제였더라."
치열한 표정 뒤에 숨겨진 생각의 총량은 깃털보다 가볍다. 이것은 내가 최근에 깨달은 기이한 공포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진짜' 생각이 없다. 그저 입력된 알고리즘대로 움직일 뿐이다.
2. 퀘스트 창: 본질이 소거된 노동
"사람들이 본질 외적인 것만 뒤지게 하고 있다"는 말은 내 폐부를 찔렀다. 그것은 현대인의 삶을 설명하는 가장 잔인하고도 정확한 메타포다.
우리의 일상을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온라인 RPG 게임에 대입해 보자. 초보자 사냥터에서 '슬라임 100마리를 잡아오라'는 퀘스트를 받은 유저를 상상해 보라. 그는 왜 슬라임을 잡아야 하는지, 이 슬라임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경험치(월급)와 레벨업(승진)을 위해 마우스 왼쪽 버튼을 기계적으로 클릭할 뿐이다.
사무실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엑셀 칸을 채우고, 보고서의 자간을 조정하고, 의미 없는 회의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은 '일(Work)'이라기보다는 '노가다(Grinding)'에 가깝다. 삶의 본질—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은 로그아웃 버튼조차 없는 이 게임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우리는 그저 '일일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 눈을 충혈시키며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3. 자동사냥(Auto-Combat)의 비극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자동사냥 모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해서 움직인다.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대는 손, 상사에게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죄송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는 스마트폰 위의 엄지손가락.
생각이 없다는 것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너무 바빠서 생각을 멈췄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퀘스트의 홍수 속에서, 사유(思惟)는 사치스러운 스킬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본질'을 뇌의 구석으로 밀어 넣고, 가장 껍데기뿐인 '현상'에 목숨을 건다. 보여주기 위한 보고서,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한 소비, SNS에 전시하기 위한 행복. 이것들은 게임 속 캐릭터가 착용하는, 능력치는 없는데 비싸기만 한 '코스튬 아이템'과 무엇이 다른가.
4. 에필로그: 플레이어가 될 것인가, NPC가 될 것인가
한때 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열심히 살기에, 그 안에 거대한 뜻이 숨어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열심(熱心)의 대부분은 공허를 메우기 위한 몸부림이거나, 남들이 뛰니까 덩달아 뛰는 관성임을.
온라인 게임에서 '노가다'를 반복하다 보면 문득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는 순간이 있다. "내가 지금 데이터 쪼가리를 얻으려고 이 짓을 하고 있나?" 당신이 지금 느낀 그 감정이 바로 인생이라는 게임의 서버 점검 시간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퀘스트 창에 뜨는 노란색 느낌표만 쫓아다니며 맵을 배회하는 NPC(Non-Player Character)로 살 것인가, 아니면 잠시 마우스를 놓고 게임의 규칙 자체를 의심하는 플레이어(Player)가 될 것인가.
자동사냥 버튼을 끄자. 그리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는 대신, 내 캐릭터가 서 있는 이 필드가 대체 어디인지, 내가 진짜로 가고 싶은 던전은 어디인지 지도를 펼쳐봐야 한다.
생각 없이 휘두르는 칼질은, 아무리 빨라도 허공을 가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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